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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지금 필요한 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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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5

세계 반도체 업체들은 휴대전화와 노트북 컴퓨터 등에 쓰이는 통신용 반도체 칩의 성능 향상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세계 최초 CTF낸드 기술 개발과 상용화 성공을 발표하는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반도체, 지금 필요한 건 뭐?
  

`스피드 전쟁` 점화...통신용 수요 늘면서 고속 소자 개발 경쟁 치열 

반도체’라는 용어는 이제 우리 국민들에게 낯설지 않다. 생활 속에 배어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싶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쉽게 마주치는 친근한 용어가 되었다. 
그 덕분인지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는 반도체에 관한 한 반(半)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DRAM, 플래시 메모리 등의 메모리 칩 종류에 정통하고 2백56메가비트니 1기가비트니 하는 메모리 칩의 최근 동향까지 꿰고 있다. 
그러나 이들 친숙한 용어의 나열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반도체는 곧 메모리를 뜻하며, 이른바 ‘비메모리 반도체’는 왠지 낯설고 이질적인 대상으로 인식된다. 실상을 살펴보면 규모가 약 2천5백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5백억 달러 남짓으로 4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4분의 3 이상을 차지하는 나머지 시장은 비메모리 반도체의 몫인 것이다. 
이러한 비메모리 반도체에는 어떤 종류들이 있을까? 마이크로 프로세서, 디지털 신호처리 칩, 주문형 반도체 등 다양한 칩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통신용 반도체로 분류되는 것들이 있다. 통신 시스템의 송수신 영역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들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흔히 RF(Radio Frequency) 회로 혹은 초고주파 회로라고 불리는 칩들이 포함된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무선 랜 기능이 장착된 최신 노트북 컴퓨터, 요즘 인기 상승 중인 블루투스 기기 외에도 DMB 단말기, GPS 단말기, 위성방송 수신기 등의 갖가지 무선 및 유선 단말기에 이러한 통신용 반도체 칩들이 내장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칩은 트랜지스터라고 불리는 반도체 소자의 집적체로 볼 수 있는데, 통신용 반도체 칩을 구성하는 반도체 소자는 메모리 혹은 마이크로 프로세서에 흔히 적용되는 범용 반도체 소자와는 약간의 차별성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낮은 주파수 대역에서 동작하는 통신 시스템에서는 범용의 실리콘 CMOS(Complementary Metal-Oxide Semiconductor) 기반 소자가 여전히 사용되지만, 주파수 대역이 증가하면서 약간은 생소하게 들리는 실리콘 게르마늄(SiGe) 바이폴라 소자나, 갈륨비소(GaAs) 혹은 인듐인(InP)과 같은 화합물 반도체 계열의 소자가 선호되는 경향을 보인다. 
실리콘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도체 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견인해온 대표적 반도체 물질이다. 이에 기반을 둔 실리콘 CMOS 기반 소자는 메모리뿐 아니라 다양한 비메모리 반도체 칩에서도 가장 널리 사용되는 범용 반도체 소자이다. 
이에 반해 실리콘 게르마늄 바이폴라 소자는 같은 실리콘을 기반으로 하되 소자의 구조 일부에 실리콘 게르마늄 합성 물질을 도입함으로써 성능을 향상시킨 소자로 최근 들어 고속 반도체 응용에서 주목되고 있다. 
갈륨비소 및 인듐인으로 대표되는 화합물 반도체는 실리콘에 비해 소자 제작 공정이 까다로운 반면, 뛰어난 고속 동작 특성을 지니고 있어 고속 반도체 소자에 주로 응용되어왔다. 
최근 통신용 반도체 칩을 구성하는 이들 고속 반도체 소자의 동작 속도를 높이기 위한 경쟁에 불이 붙었다. 화합물 반도체 소자의 경우 그 차단 주파수 (cut-off frequency:전류 이득이 없어지는 주파수로서 일반적으로 소자의 동작 속도를 나타내는 수치)가 2000년대 초 일본 후지쓰(Fujitsu) 연구진에 의해 4백GHz(1GHz=10억Hz)와 5백GHz의 벽을 연이어 돌파한 데 이어 2006년에는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연구진에 의해 7백65GHz에 달하는 차단 주파수를 가진 소자가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연합뉴스
 
 
실리콘 기반 소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2003년 IBM 연구진에 의해 3백75GHz의 차단 주파수를 가지는 실리콘 게르마늄 바이폴라 소자가 개발된 데 이어, 일반적으로 동작 속도 면에서 처진다고 여겨지던 실리콘 CMOS 소자도 기록 경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5년 3백30GHz의 차단 주파수를 가진 소자가 IBM에 의해 발표되었고, 2006년에는 인텔 연구진이 3백60GHz의 차단 주파수를 가진 소자를 개발했다. 
실리콘 기반 소자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고, 기존의 반도체 생산 라인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화합물 반도체 소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동작 속도에도 불구하고 실용화 면에서는 더 큰 잠재력을 지닌다.
이렇게 치열한 소자의 동작 속도 향상 경쟁에 대학과 기업이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수한 성능의 통신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서이다. 일반적으로 통신 시스템에서는 높은 신호 품질과 낮은 전력 소모가 중요시된다. 이를 위해서는 빠른 동작 속도의 소자가 선호된다. 이뿐 아니다. 최근 급격히 수요가 증가하는 동영상 등 대규모 파일 전송을 위해서는 데이터 전송 속도의 극대화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통신 시스템에 사용되는 주파수 대역의 향상이 필요하고 더 빠른 동작 속도의 소자가 요구되는 것이다.


1테라헤르츠의 벽, 누가 깰 것인가


수백GHz급 소자가 곧바로 수백GHz 주파수 대역에서 동작하는 통신 시스템의 구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소자의 동작 속도를 나타내기 위해 앞서 사용된 차단 주파수 값은 시스템 레벨이 아닌 소자 레벨에서 유용하게 동작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이들 소자에 기반한 통신 시스템의 구현은 이보다 낮은 주파수로 제한된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수백GHz 소자를 활용한다면 수십GHz 혹은 100GHz를 넘는 주파수 대역에서 동작하는 통신 시스템 구성이 가능하다.

 


 
 
ⓒ연합뉴스
 
 
수십GHz에 이르는 주파수 대역에는 이들 소자가 곧바로 사용될 수 있는 응용 분야가 이미 존재한다. 60GHz 대역에서 동작하는 무선 랜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2.4GHz 대역의 무선 랜에 비해 100배 가까이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77GHz 대역에서 동작하는 자동차 레이더 시스템은 주변의 장애물 감지 및 인접한 차량과의 통신을 통해 교통사고 감소 및 도로의 효율적 사용에 기여하게 된다. 94GHz 대역의 레이더 시스템은 항공기의 안전 운항 및 기후 관찰 등의 목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들 시스템의 성능은 이들을 구성하는 소자의 동작 속도 증가에 힘입어 크게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까지는 응용이 미진한 100GHz 이상 주파수 대역도 수백GHz급 소자의 등장에 힘입어 그 응용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높은 주파수가 선호된다고 해서 원하는고주파수 대역을 임의로 사용할 수는 없다. 특히 무선 통신은 모두가 공유하는 공간을 전파의 매개로 사용하기 때문에 주파수 관리가 국가 차원에서 엄격히 이루어진다. 
100GHz 이상의 주파수에는 아직까지 특정한 응용이 지정되지 않은 대역(unlicensed band)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대역 주파수의 응용에 대한 가능성이 고속 소자의 거듭된 성능 향상으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고속 동작 속도 개발의 전면에 미국과 일본의 연구진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고성능 메모리 소자의 개발에 집중해 이러한 통신용 반도체의 개발에는 한발 늦게 뛰어든 감이 있다. 최근 들어 서울대 연구진 등에서 선두 진영과 비슷한 수준의 결과를 잇달아 발표하는 등 관련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빠른 동작 속도의 기록 행진에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연구원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연구도 다수 있다. 
이들 고속 반도체 소자의 동작 속도 향상을 위해 매진하는 연구진들에는 한 가지 꿈이 있다. 1테라헤르츠(THz=1천GHz)의 벽을 세계 최초로 돌파하고자 하는 야심이다. 
고속 반도체 소자 경쟁에서 1THz는 그 응용 성과와는 별개로 마라톤에서의 2시간, 100m 달리기에서의 10초에 비견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요원하게 보이던 THz 소자의 꿈은 어느새 실체를 갖고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 
‘THz 소자 개발 성공’이라는 뉴스를 듣게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기왕이면 이 뉴스의 제목에 ‘한국 연구진에 의해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훨씬 뜻깊을 것이다.

이재성 (고려대 교수·전기전자전파공학부)

시사저널 [913호 2007년 0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