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대학 뉴스
[정우진의 로봇 이야기] 좋은 로봇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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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5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개발 중인 지능형 실버 도우미 로봇.
험준한 산악지대에 투입될 순찰경비로봇의 개발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경비전문가, 수요자, 로봇 엔지니어와 로봇 연구자 등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고 있었다. 작업환경에 대한 면밀한 검토 후, 로봇 엔지니어가 ‘산에선 로봇이 움직이기 어려우니 전용궤도를 설치하여 이동시키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자 경비전문가를 비롯한 다른 참석자의 한결같은 반응이 “에이. 그게 무슨 로봇입니까. 로봇이면 산이 험해도 알아서 잘 가야지요”였다.
로봇의 정의에 대해 학계나 산업계의 일치된 견해는 없다. 로봇공학계의 원로인 미국 카네기멜런대의 카나데 교수는 자동문도 로봇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로봇이란 인식·추론·행동 세 가지 기능을 갖고 사람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시스템이다. 이 세 가지 기능은 사람에 견주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물·환경이나 상황을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로봇은 “분위기 파악”이 안 되거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과 같다. 행동능력이 떨어지는 로봇은 걸핏하면 뭘 깨뜨리는 등 행동에 조심성이 없고 “칠칠치 못한” 사람에 해당한다. 추론능력이 떨어지면 일의 중요도를 잘못 판단해서 시간낭비만 하거나,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변죽만 울리는” 사람이 된다.
자동문의 경우 사람의 접근을 감지해 문을 열어주는 유용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일종의 로봇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로봇의 세 가지 기능에 덧붙여 로봇을 로봇답게 만드는 결정적인 특성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다기능성 내지 범용성이다. 혼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단순한 기계장치와 로봇을 구분하는 특징이다. 이 기준에 비춰 보면 문을 여닫는 한 가지 기능만 갖고 있는 자동문은 로봇이라고 하기가 꺼려진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운전면허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편하자고 만든 기계를 조작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로봇 조작에 면허가 필요하다면 사람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집에 로봇이 배달되면 단지 스위치를 켜는 것으로 순조롭게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좋은 로봇이란 결국 말 한마디면 척척 알아서 하는 로봇일 것이다. 나아가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로봇, 기술적으로 말해 ‘정보 숨기기(Information hiding)’를 한 로봇이다.
정보 숨기기란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주고받고 나머지는 모두 시스템 내부에 숨겨버리는 기능이다. 사람들은 로봇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기를 바라면 되지 로봇의 세세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이다. 로봇에 음료수 심부름을 시킬 때 도중에 부딪치거나 엎지르지 말고 빨리 가져오라고 일일이 지시해야 한다면 너무 번거롭지 않을까. 좋은 로봇이라면 “오늘은 뭐가 좋을까?”라고 묻기만 하면 그날의 날씨, 로봇 주인의 기분과 건강상태를 고려해서 입을 옷이나 알맞은 음식 등을 센스 있게 추천해줄 것이다. 관공서에서 처리할 일이 여러 가지 있을 경우에 창구 직원 한 명에게만 얘기하면 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것과 같다. 누구든 시스템 내의 복잡한 업무분장이나 처리과정은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로봇 분야에서도 이전에는 ‘안전성’이나 ‘신뢰성’ 등을 빈번히 기술목표로 세웠지만 최근에는 “믿음직한 로봇(dependable robot)”이라는 개념으로 점차 굳어지는 추세다. 사람이나 로봇이나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결국 ‘믿음직한 존재’가 되는 공통점을 지닌 것 같다.
정우진 (고려대 교수·기계공학과)
중앙SUNDAY [19호, 2007-07-22]
험준한 산악지대에 투입될 순찰경비로봇의 개발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경비전문가, 수요자, 로봇 엔지니어와 로봇 연구자 등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고 있었다. 작업환경에 대한 면밀한 검토 후, 로봇 엔지니어가 ‘산에선 로봇이 움직이기 어려우니 전용궤도를 설치하여 이동시키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자 경비전문가를 비롯한 다른 참석자의 한결같은 반응이 “에이. 그게 무슨 로봇입니까. 로봇이면 산이 험해도 알아서 잘 가야지요”였다.
로봇의 정의에 대해 학계나 산업계의 일치된 견해는 없다. 로봇공학계의 원로인 미국 카네기멜런대의 카나데 교수는 자동문도 로봇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로봇이란 인식·추론·행동 세 가지 기능을 갖고 사람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시스템이다. 이 세 가지 기능은 사람에 견주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물·환경이나 상황을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로봇은 “분위기 파악”이 안 되거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과 같다. 행동능력이 떨어지는 로봇은 걸핏하면 뭘 깨뜨리는 등 행동에 조심성이 없고 “칠칠치 못한” 사람에 해당한다. 추론능력이 떨어지면 일의 중요도를 잘못 판단해서 시간낭비만 하거나,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변죽만 울리는” 사람이 된다.
자동문의 경우 사람의 접근을 감지해 문을 열어주는 유용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일종의 로봇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로봇의 세 가지 기능에 덧붙여 로봇을 로봇답게 만드는 결정적인 특성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다기능성 내지 범용성이다. 혼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단순한 기계장치와 로봇을 구분하는 특징이다. 이 기준에 비춰 보면 문을 여닫는 한 가지 기능만 갖고 있는 자동문은 로봇이라고 하기가 꺼려진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운전면허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편하자고 만든 기계를 조작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로봇 조작에 면허가 필요하다면 사람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집에 로봇이 배달되면 단지 스위치를 켜는 것으로 순조롭게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좋은 로봇이란 결국 말 한마디면 척척 알아서 하는 로봇일 것이다. 나아가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로봇, 기술적으로 말해 ‘정보 숨기기(Information hiding)’를 한 로봇이다.
정보 숨기기란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주고받고 나머지는 모두 시스템 내부에 숨겨버리는 기능이다. 사람들은 로봇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기를 바라면 되지 로봇의 세세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이다. 로봇에 음료수 심부름을 시킬 때 도중에 부딪치거나 엎지르지 말고 빨리 가져오라고 일일이 지시해야 한다면 너무 번거롭지 않을까. 좋은 로봇이라면 “오늘은 뭐가 좋을까?”라고 묻기만 하면 그날의 날씨, 로봇 주인의 기분과 건강상태를 고려해서 입을 옷이나 알맞은 음식 등을 센스 있게 추천해줄 것이다. 관공서에서 처리할 일이 여러 가지 있을 경우에 창구 직원 한 명에게만 얘기하면 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것과 같다. 누구든 시스템 내의 복잡한 업무분장이나 처리과정은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로봇 분야에서도 이전에는 ‘안전성’이나 ‘신뢰성’ 등을 빈번히 기술목표로 세웠지만 최근에는 “믿음직한 로봇(dependable robot)”이라는 개념으로 점차 굳어지는 추세다. 사람이나 로봇이나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결국 ‘믿음직한 존재’가 되는 공통점을 지닌 것 같다.
정우진 (고려대 교수·기계공학과)
중앙SUNDAY [19호, 2007-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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