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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소재’ 눈앞에-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김영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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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5
머리카락 굵기의 1만분의 1에 불과한 ‘나노선(nanowire)’이 차세대 메모리와 질병 진단 센서를 만들 마법의 지팡이로 떠오르고 있다. 나노선은 지름이 수㎚(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수백㎚인 가늘고 긴 선(線). 반도체 나노선을 세로로 촘촘히 배열하면 엄지 손톱 크기에 1000편 이상의 DVD 영화를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칩을 만들 수 있다.

- ▲ 미 하버드대에서 개발한 광섬유용 나노선(붉은색)이 머리카락(검은색)을 휘감고 있는 모습. 이 나노선은 지름이 50나노미터에 불과하다.
또 금(金)이나 은(銀)처럼 인체에 해가 없는 물질로 나노선을 만들면 인체 내부의 분자 하나까지도 검출할 수 있는 질병 진단 센서가 된다. 나노선으로 태양전지를 만들면 잘 휘어져 옷에도 붙일 수 있다. 2006년 네이처지는 나노선 연구를 ‘물리학에서 주목 받는 5개 분야’ 중 하나로 선정했다.
◆차세대 반도체칩 만들 벽돌=반도체 메모리는 회로 사이의 거리(선폭)가 줄어들수록 저장용량이 늘어난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은 지난해 삼성전자가 개발한 선폭 40㎚ 메모리. 그러나 빛을 쪼여 실리콘 표면을 깎아내는 기존의 ‘톱다운방식(Top-Down·위에서 아래로)’으로는 선폭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나노미터 단위의 물질을 벽돌 쌓듯 결합시키는 ‘바텀업방식(Bottom-Up·아래서 위로’)은 10㎚ 이하의 선폭까지 가능하다. 나노선은 바텀업방식을 구현할 주요한 소재다.
예를 들어 반도체 물질로 나노선을 만든 뒤 세로로 세워 촘촘하게 배열하면 3차원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하면 기존 평면 반도체 메모리를 층층이 쌓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당연히 메모리 용량도 늘어난다.
물론 바텀업방식은 나노선 외에 나노입자도 사용한다. 그러나 나노입자가 벽돌 한 개라면 나노선은 수천 개의 벽돌을 이미 쌓아놓은 형태이므로 구조물을 만들기가 훨씬 쉬워진다. 게다가 선구조여서 나노입자로 만든 물질과 달리 잘 휘어진다.

- ▲ 고려대 김영근 교수팀이 개발한 바코드 형태의 나노선. 자석에 끌리게 하는 철과 생체물질을 쉽게 붙일 수 있는 금이 교대로 있어 바 이오센서로 활용할 수 있다.
- ◆IT에서 BT까지 가능성 무궁무진=미국 하버드대의 리버(Lieber) 교수팀은 반도체 나노선으로 양파처럼 껍질이 겹겹이 있는 LED(발광다이오드)를 개발했다. 껍질을 구성하는 물질의 양을 조절하면 다양한 색깔을 내게 할 수 있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의 알리비사토스(Alivisatos) 교수팀은 나노선으로 태양전지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기존 실리콘 반도체 태양전지는 생산 단가가 높아 실용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신 반도체 물질로 나노선을 대량 합성해 태양전지를 만들면 생산 단가가 훨씬 줄어든다. 나노선이라서 잘 휘어져 옷이나 곡면이 있는 전자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다.
또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대(UCLA) 히스(Heath) 교수팀은 나노선으로 34㎚의 선폭을 가지는 초고밀도 반도체 회로를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지난 3월 KAIST 최양규 교수가 전자가 흐르는 통로를 실리콘 나노선으로 만든 8㎚ 선폭 메모리 소자를 개발했다. 연구팀은 8㎚ 메모리 소자가 상용화되면 메모리칩의 크기가 25분의 1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에는 생명공학에서도 나노선이 주목받고 있다. 나노선의 끝에 인체 내부의 특정 단백질에만 결합하는 항체(抗體)를 붙이면 질병 진단용 바이오 센서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세균에 강한 은으로 나노선을 만들어 섬유와 결합시키면 밴드나 거즈 등 각종 의료용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자석처럼 움직이는 바이오 나노선=하지만 나노선은 크기가 워낙 작아 원하는 곳으로 가져 가기가 매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자석과 같은 성질을 가진 자성(磁性) 나노선이다. 현미경을 보면서 아주 작은 핀셋으로 나노선을 하나하나 움직이는 것보다 쇳가루를 움직이듯 자석으로 자성 나노선을 이동시키면 작업이 훨씬 쉬워진다.
자성을 띠게 하는 데에는 주로 니켈(Ni) 원소가 사용된다. 그런데 니켈이 인체에 안전한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고려대 김영근 교수는 지난 4월 자기장에 끌리는 철과 몸에 들어가도 이상이 없는 금(金)을 합쳐놓은 나노선을 개발, 화학 분야 권위지인 독일 ‘안게반테케미(Angewandte Chemie)’지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거푸집을 만들고 그 안에 시멘트를 부어서 굳혀 건물을 짓듯 김 교수팀은 기다란 구멍이 나있는 틀에 철과 금이 녹아 있는 용액을 붓고 전기를 흘려 굳혔다. 이때 전기의 세기를 조절해 바코드처럼 철과 금이 교대로 있게 했다. 철은 자석에 끌려가도록 해주며, 금은 다양한 생체물질을 붙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인체 내부에서 작동하는 바이오 센서로 활용할 수 있다.
같은 달 KAIST 김봉수 교수는 원래 자성을 띠지 않는 코발트실리콘(CoSi)도 나노선으로 만들면 강한 자성을 띨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규명, ‘나노 레터스(Nano Letters)’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렇게 만든 나노선을 수직으로 촘촘히 배열하면 전자의 흐름 대신 자성을 띠는 물질의 방향에 따라 정보를 저장하는 3차원 M램이 가능해진다. M램은 현재 플래시 메모리보다 1000배 빠른 데이터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는 차세대 메모리다.
최근 김 교수는 촉매 없이 은 나노선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 ‘미국화학회지(Journal of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은에 다른 분자가 달라붙으면 빛을 쪼였을 때 산란되는 빛의 세기가 1조배 이상 커진다. 따라서 은 나노선으로 바이오 센서를 만들면 빛의 세기가 변하는 것을 분석해 분자 하나까지 검출할 수 있다.
조선일보 2007/07/25

